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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하고 포근한 에세이 추천,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이다혜

by 흰둥이슬 2024. 9. 23.

어쨌거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인 것 같다. 새벽의 고요한 시간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면 책을 읽고 싶고 글을 쓰고 싶어지니 말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슬기로운 국어생활이란 책을 읽는 생활, 글을 쓰는 생활인 것이다.
 
읽고 있는 책은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이다혜 저)”이라는 책이다. 책 표지엔 형광핑크색 선명한 배경에 귀여운 턱시도 고양이가 계란후라이를 이불처럼 덮고 식빵을 굽고 있다. 사과와 잼, 꿀병과 함께. 이 귀여운 표지에 이끌려 이 책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이지 작고 예쁜 책이다. 에세이를 낸다면 이 정도로 예쁜 표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용도 어쩌면 이렇게도 내 취향일까. 조식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호텔 조식에 관한 내용과 부산에서 먹은 아침에 대한 내용이다.
 

조식의 품격 -호텔조식

호텔 조식을 싫어하는 여자가 있을까? 특별히 맛있는 메인 메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호텔 조식은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호텔 조식’이라고 단어를 입에 올리기만 해도 내가 평생 다닌 여행지의 기억들이 차르르 떠오른다.
당장 생각나는 건 세부의 어떤 호텔에서의 조식.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태풍으로 취소되었다. 세부의 날씨는 이상이 없었지만 부산이 태풍의 한가운데 있었던 모양이다. 직장에 부랴부랴 연락을 해 연차를 하루 더 썼고, 항공사에서 급히 숙소를 잡아 주었다. 숙소를 잡아 주던 직원들도 굉장히 친절했고, 같이 승합차를 빌려 타고 호텔로 갔었던 사람들도 유쾌했다. 나이가 제법 있으신 어른들이었는데 다이빙 크루팀이었다. 다이빙은 어쩐지 아주 젊고 도전적인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었는데 잘못된 편견이었다. 멋진 다이빙 크루와 함께 간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조식을 먹고 있자니 백발의 노신사가 인사를 건냈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낯선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건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에 가 본적이 있다며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그에 대해 나 역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보라카이에서의 조식도 떠오른다. 조식 메뉴가 맛있기로 소문난 리조트에서 여러 날을 묵었는데 아침잠이 너무나 소중해서 한 번 밖에 못 먹었던 기억이다. 오늘도 못 먹었군, 하는 기억이 남아 있다.
괌에서의 조식, 코사무이에서의 조식, 유럽에서의 조식, 일본에서의 조식, 제주도에서의 조식! 호텔 조식은 정말 여행의 좋은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단어이다.
 

바다의 풍미 –부산 전복죽과 대구탕

 
부산에서 먹은 아침에 대한 챕터에서는 머릿속에 그 음식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서 입에 군침이 돌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부산 사람인지라 작가가 이야기하는 음식들은 내게 너무나 익숙한 부산의 음식들! 읽으면서 내내 그렇지, 그렇지 그거 맛있지, 암.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부산의 아침에 어떤 것들이 있냐고? 일단 전복죽으로 시작이다. 아니, 초록색 전복죽을 처음 먹어 봤다고 해서 깜짝 놀랐네. 전복죽은 내장 넣어서 초록으로 먹는 것이 국룰이 아니란 말인가! 부산 사람은 너무 당연해서 신기한 건 줄도 몰랐네. 전복죽 맛있는 건 당연하고 두 번째는 떡볶이. 아침으로는 너무 특이하긴 한데 너무 맛있으니 어쩔 수 없지. 부산의 커다랗고 달고 매운 쌀떡볶이는 밀떡파에게도 매력적이란다. 작가님은 다른 곳에서 드셨겠으나 조방맵떡이 맛있습니다. 매워서 울면서 먹지만 또 찾아가게 만들지요. 그 다음은 대구탕. 나도 어른이 되어서야 이 맛을 알기는 했으나 아침으로 먹기에 정말 시원하고 뜨뜻하고 부드럽고 완벽한 음식. 그 다음 돼지국밥. 이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부산 사람 어깨 으쓱하게 만드는 메뉴들이 줄줄이 나오니 이 새벽에 정말 군침도는 챕터이다. 아마 다른 지방에도 이렇게 그 지방 사람들 어깨 으쓱하게 만드는 메뉴가 있을 텐데 궁금해진다. 지역별 어깨 으쓱 음식탐방기라도 써 볼까.
 

오래 보관해도 괜찮아 –오트밀

현대에 들어서 건강 식품으로 각광받게 된 이 낯선 이름의 아침 메뉴는 나 역시 두 봉지 정도 구매한 적이 있다. 자주 해 먹지 않아 유통기한이 걱정되서 다 먹지 못하고 폐기되긴 했지만 나름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내가 먹겠다고 구매한 건 아니고 아이 이유식 요리책에 있어서 사서 몇 번 만들어 먹었다. 요리책 저자의 아이가 아주 잘 먹었다는 그 메뉴는 블루베리 바나나 포리지. 오트밀을 끓여 죽처럼 만든 것을 포리지라고 한다. 오트밀은 납작하게 눌린 귀리로 혹시 안 먹어 보았다면 곡식을 납작하게 빻아 죽으로 끓인 맛을 상상하면 된다. 거기에 블루베리와 바나나라...먹어보면 달콤하고 아이도 어느 정도 먹어주긴 했는데 한국인에겐 좀 낯선 맛이기는 하다. 죽에 블루베리와 바나나를 넣고 끓인다니.
작가도 오트밀죽을 처음에는 토사물 같다며 멀리하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맛있게 먹는 방법을 배우고 잘 먹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 10대 건강식품이라니 한번은 다들 도전해 보시는 것도.